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 73:23-24)
우선 시인은 자신이 항상 주님과 함께 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늘 느끼지는 못하지만, 특별히 고난중에 함께 하심을 느낄 때 깊은 감동과 희열을 느낄 때가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시인은 이 고난중에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깊은 수렁에서 시인이 주님의 손을 붙들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강하고 놀라운 손으로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시인의 손을 붙드셨다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체험을 다른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시 107:8).
시인의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라는 고백을 들으면, 시인은 고난을 겪은 후에 자신을 인도하시는 분이 주님 이심을 더 잘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의 교훈으로 인도받을 때 비로서 자신이 올바른 길로 걸어갈수 있다는 고난의 체험을 통한 믿음의 확신을 갇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제 시인은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는 천국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현할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시인은 앞으로도 계속 주의 교훈으로 인도받게 될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곳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의 감동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산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심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위로가 될수 있기를 이 아침에 간구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73:23-24) "교훈으로"란 말에 "영광"을 추가한 것은 어떤 사람이 생각하듯 영생은 제한이 없어야 하기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말은 이땅에서 볼 수 있는 처음 시작에서부터 하늘에서 실현되어질 것을 바라는, 즉 마지막에 이르는 우리 행복의 전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공로없이 은혜로 주시는 영생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다는 입장에서 볼 때 이 낮은 곳, 즉 현재의 생활 속에서도 그러한 행복의 맛을 볼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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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31일 수요일
2013년 7월 24일 수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시 71:20-21)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많고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시 71:20-21)
시인은 "심한 고난을 보이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시인에게 이 고난을 겪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 이심을 올바로 인식하며 고백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시인에게 고난이 밀려 올때 그 고난의 창시자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올바로 인식할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흔히 고난이 닦쳐 오면 좌충우돌하며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패한 본성이 우리 안에서 얼마나 자주 우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왔는지 지난 체험들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바 입니다.
이제 시인은 이 고난을 주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라고 새로운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은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절한 바램입니다. 또한 이는 지난 시기 구원의 체험에서 얻어진 지혜가 담겨진 소망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망에는 존 칼빈이 표현하고 있듯이 "자기가 비록 바닥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구출되고야 말 것이며 기쁨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담겨저 있다고 보입니다. 시인이 고백하고 있는 이 소망이 오늘 우리의 새로운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지금도 심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위로가 될수 있기를 이 아침에 간구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71:20) 다윗은 '하나님의 돌이키심'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찬송함에 이른다. 즉 다윗은 자기에게 일어나는 환난들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다. 이 사실은 자기의 형편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자마자 뒤집혀졌다는 사실을 볼 때 명확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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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71편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시 71:13-14)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가 "항상 소망"을 품고 살아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삶일까요? 현재 놓여진 상태가 늘 소망을 품기에 합당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고난중에도 우리 성도님들에게 임하는 특별한 은혜의 체험이라는 것을 더욱 잘 느끼게 됩니다.
지금 시인은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 그리고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로 인해 심한 갈등과 심령의 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들에게 "멸망이 임하고" "수욕이 덮이게 하기"를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이 처한 심한 고난의 상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시인은 늘 소망을 잃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시인의 마음을 주장하시지 않고 어떻게 이러한 마음의 결정이 일어나겠습니까?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이런 특별한 은혜가 임하길 바라고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71:4) 다윗은 승리를 획득함으로써 또다시 감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악한 자들이 자기의 단순함을 비웃을 동안에도 틀림없이 이런 고통들을 남자답게 헤쳐 나갔다는 사실을 “소망”이라는 말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고통 중에서 구원받을 가망이 없었고,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믿음을 득의만만하여 멸시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다윗은 그럴지라도 소망을 항상 품기로 작정했다.이러한 결심은 가장 어두운 고통의 흑암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본 진실한 믿음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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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리이다 (시 71:13-14)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가 "항상 소망"을 품고 살아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축복된 삶일까요? 현재 놓여진 상태가 늘 소망을 품기에 합당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고난중에도 우리 성도님들에게 임하는 특별한 은혜의 체험이라는 것을 더욱 잘 느끼게 됩니다.
지금 시인은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 그리고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로 인해 심한 갈등과 심령의 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들에게 "멸망이 임하고" "수욕이 덮이게 하기"를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이 처한 심한 고난의 상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게 시인은 늘 소망을 잃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시인의 마음을 주장하시지 않고 어떻게 이러한 마음의 결정이 일어나겠습니까? 오늘도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이런 특별한 은혜가 임하길 바라고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71:4) 다윗은 승리를 획득함으로써 또다시 감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악한 자들이 자기의 단순함을 비웃을 동안에도 틀림없이 이런 고통들을 남자답게 헤쳐 나갔다는 사실을 “소망”이라는 말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그가 고통 중에서 구원받을 가망이 없었고,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의 믿음을 득의만만하여 멸시하기를 그치지 않았으나 다윗은 그럴지라도 소망을 항상 품기로 작정했다.이러한 결심은 가장 어두운 고통의 흑암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빛으로 인도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만을 바라본 진실한 믿음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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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시편묵상 70장 5절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메일로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시 70:5)
이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 지체치 마소서". 아침에 일어나면서 문득 기억나게 해 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활력소가 됨을 우리는 가끔 느끼게 됩니다. 저에게는 이 시인의 고백에서 특별히 "지체치 마소서"라는 하소연이 마음에 와서 닫습니다. 어려운 고난중에 있는 시인은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주님에게 부르짖고, 이어서 "지체치 마소서"라고 다시 간청드리고 있습니다. 이 부르짖음과 이어서 한번 더 간청드리는 시인의 기도가 얼마나 잘 조화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목도하며 급하게 부르짖고 있지만, 아울러 과거에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셨던 주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겪고 있는 고난중에서도 또 다른 주님의 구원을 바라고 믿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다만 이 고난의 시간을 너무 지연시키지 않으시길 간구하며, 구원에 대한 확신과 아울러 시간의 단축을 "지체치 마소서"라는 기도로 드리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오늘도 어려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놀라운 위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지체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메튜헨리 주석/ 시 70:5) 이는 그가 궁핍과 고난 속에서 내면적인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탄원하고 있다. "속히 나를 건시소서. 내 영혼의 열망이 주를 향하고 있나이다. 나는 속히 도움을 받지 못하면 멸망을 당하리이다. 주가 아니면 나에게는 구원을 기대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니이다. 주께서 주를 찾는 모든 자에게 그리 하실 것을 약속하였사오매 내가 주를 의지하고 나에게도 그리 될 것을 믿나이다. 주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신 사실을 내가 종종 보았사오며 또 주께서는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시니이다. 그러므로 속히 내게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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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시 70:5)
이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 지체치 마소서". 아침에 일어나면서 문득 기억나게 해 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활력소가 됨을 우리는 가끔 느끼게 됩니다. 저에게는 이 시인의 고백에서 특별히 "지체치 마소서"라는 하소연이 마음에 와서 닫습니다. 어려운 고난중에 있는 시인은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주님에게 부르짖고, 이어서 "지체치 마소서"라고 다시 간청드리고 있습니다. 이 부르짖음과 이어서 한번 더 간청드리는 시인의 기도가 얼마나 잘 조화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목도하며 급하게 부르짖고 있지만, 아울러 과거에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셨던 주님의 구원을 기억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현재 겪고 있는 고난중에서도 또 다른 주님의 구원을 바라고 믿으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다만 이 고난의 시간을 너무 지연시키지 않으시길 간구하며, 구원에 대한 확신과 아울러 시간의 단축을 "지체치 마소서"라는 기도로 드리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오늘도 어려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놀라운 위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한 "지체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메튜헨리 주석/ 시 70:5) 이는 그가 궁핍과 고난 속에서 내면적인 갈등을 심하게 겪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탄원하고 있다. "속히 나를 건시소서. 내 영혼의 열망이 주를 향하고 있나이다. 나는 속히 도움을 받지 못하면 멸망을 당하리이다. 주가 아니면 나에게는 구원을 기대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분이시니이다. 주께서 주를 찾는 모든 자에게 그리 하실 것을 약속하였사오매 내가 주를 의지하고 나에게도 그리 될 것을 믿나이다. 주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신 사실을 내가 종종 보았사오며 또 주께서는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시니이다. 그러므로 속히 내게 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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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2013년 7월 3일 수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69:7-8
시편 묵상 나눔의 아침입니다.
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메일로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시 69:7-8)
시인은 자신이 받은 훼방과 수치가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정말로 쉽지 않은 고백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백이 어떤 경우에는 위선자로 보여지기 좋은 표현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을 신학적으로 정립했던 존 칼빈은 이 시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성도들은 자기들이 계획하고 행한 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그 근거가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고 탄원할 수 있을 때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여기에서 주장하지 아니하고 탄원한다는 존 칼빈의 해설이 마음에 꼭 와 다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에서 주장하기 보다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원며 위로 받는 습관을 키워야하겠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이 말씀의 감동이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이루져 위로를 받는 아침이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시 69:7-8) 시인은 자기의 가족과 형제들에게서 잔인하게 내쫓김을 받은 사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자기의 탄원을 한층 더 심화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헌신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를 반대하는 형제들의 불만을 자극시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될 때, 혈육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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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 힘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함께 메일로 나눌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시 69:7-8)
시인은 자신이 받은 훼방과 수치가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정말로 쉽지 않은 고백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백이 어떤 경우에는 위선자로 보여지기 좋은 표현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을 신학적으로 정립했던 존 칼빈은 이 시인의 고백을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참다운 성도들은 자기들이 계획하고 행한 일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그 근거가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고 탄원할 수 있을 때 가장 큰 위로를 받는다."
여기에서 주장하지 아니하고 탄원한다는 존 칼빈의 해설이 마음에 꼭 와 다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에서 주장하기 보다는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원며 위로 받는 습관을 키워야하겠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이 말씀의 감동이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이루져 위로를 받는 아침이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시 69:7-8) 시인은 자기의 가족과 형제들에게서 잔인하게 내쫓김을 받은 사실을 덧붙여 말함으로써 자기의 탄원을 한층 더 심화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헌신적인 신앙 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우리를 반대하는 형제들의 불만을 자극시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될 때, 혈육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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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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