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신념과 바울의 신앙
Soul's strong conviction(will) and Paul the man of faith.
지난번 설교에서는 바울의 삶의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길리기야지방의 항구 도시인 다소에서 1세기 초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 상업을 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며 그의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다소에서 살며 로마의 시민권을 받아 그의 아버지와 바울은 자연이 태어나면서 로마의 시민으로서 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바리세파로서 바울은 다소에 살면서 5살부터 회당에서 가르침을 받아 율법과 미쉬나와 탈무드등을 배우고 13-15살 사이에 그의 누나가 예루살렘에 살아서 누나를 따라 예루살렘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신념의 사나이 바울
신념이란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력 이라고 사전에
나와있습니다.
나폴레옹은 ‘내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라고 했으며
조엘 오스틴 목사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에 대해 “내가 사람들이 알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 대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계획을 갖고 계시고,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지킬 때 그 계획을 이루신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맟는 말입니다.
하지만 오스틴 목사는 래리 킹 토크쇼 2010년 9월에 말하길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아님을 고백하였습니다.
모든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자신이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삶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물질적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목적임을 밝힌 것입니다.
질문해보겠습니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 라고 한 나폴레옹의 말이 신념의 말인가요, 신앙의 말인가요?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신념의 말인가요 신앙의 말인가요?
긍정의 힘이 신앙인의 말인가요 신념에 사로잡힌 말인가요?
현시대의 교회에는 신념이 강한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긍정의 힘’을 주장하는 죠엘 오스틴은 물론이고 한인교회, 또는 순복음교회에서
많은 교인들이 신념에 이끌려 봉사하고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을 신념에 사로잡힌 종교인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울하면 우리는 바리세인으로서의 사울을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세인들의 무엇이라고 부르시는가요?‘독사의 새끼들아’.... 자주 사용하신 것이 ‘외식하는 자들아’..
이 두 말씀은 아마 바리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이였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들에 대하여 그렇게 질책하셨을까요?
먼저 바리세인들이 언제 무슨 목적으로 생겨난 단체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바리세인에 대하여는 외경인 마키비서에 나타납니다.
마카비는 예수님이 오시기전 약 160년경에 활동하던 사람들입니다.
마카비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유대인들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되지의 피로 더럽히고 유대인들을 학대하는 것에 저항하던 제사장이며
그를 따라 성스러운 전쟁을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P다음은 마카비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높은 제단과 신당, 그리고 우상들을 세우고, 돼지와 더러운 짐승들로 제사를 드렸다.
자식들이 할례 받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의 삶이 모든 종류의 부정으로 타락하게 했다.
토라를 잊고, 모든 규례를 바꿔야 했다.
누구든 이 왕의 명령을 거역할 시 처형되어야 했다...
145년 키스레브 15일(BC 167년 12월 6일)에 왕은 부정한 물건을 세워 번제단을 더럽혔다. 그리고 유대 전역 도시에 높은 제단을 건설했다.“ 라고 기록하고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전586년 느브게네살에 의해 솔로몬의 성전이 불타 훼파되고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간 후 성전이 없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회당제도를 만들어 회당을 중심으로 모여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던 무리들의 시작이 바리세인이 되었으며 그들은 사울과 같이 회당에서 가르치고 또 랍비로 사역을 감당하여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무리인 사두개파들이 성전에 대한 권리를 남용하기 시작하자 바리세인들과 사두개파 제사장의 무리들은 종교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바리세인들은 율법의 글자 그대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미쉬나와 탈무드를 만들어 유대인들에게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
바리세인들은 안식에 지켜야 하는 규례들을 만들어 될 수 있는 대로 율법을 글자 그대로 지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유전’이란 단어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이 미쉬나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를 못했습니다.
특별히 안식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거나 제자들이 길을 가다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는 것을 목격하고 안식일에 일한다고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항변을 하였는데 이것은 바리세인들이 미쉬나에 기록된 것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키지 아니하는데 대한 반감인 것입니다.
지난번 설교에서 율법에 긍정적인 것 해야 할 것이 몇 가지인지 기억하시겠습니까?
2의 배수로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248 하지 말아야 할 것, 부정적인 것이 1년 365개 총 613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히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을 39가지로 분류하여 금하였으며 탈므드와 미쉬나는 이것들을 해석하고 39지에 가지치기를 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든다면 유대인들은 현재도 안식일에는 자동차를 타지 아니하는데 그 이유는 자동차에 시동을 걸으는 것이 불을 켜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집에 있는 전등의 스위치는 안식일 전에 미리 다 켜놓아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안식일에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매 층마다 자동적으로 섰다 같다 하는데 이는 누군가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바리세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하시는 행동은 장로들의 유전인 미쉬나를 지키지 아니하는 행동으로 돌에 맟아야 할 일입니다.
바리세인으로서 사울은 이런 것들이 몸에 배인 사람입니다.
바울이 대략 서기 1년경에 출생하였다 가정한다면 예수님과는 3-4살 차이가 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출생하셨습니까?
0년, 인가요?
예 맟습니다. 그러나 틀립니다.
예수님이 오신것을 기준하여 BC AD로 나누는 것으로 볼 때는 맟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탄생한 시기는 0년이 아니라 BC 4년경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10세기가 흐른 후에 계산이 잘못 된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기록된 것들을 교정하기가 힘들어 그냥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테반집사의 순교가 대략 32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사울은 대략 33세의 나이이며 그는 바리세인의 아들로서 바리세인의 가르침을 받고 바리세인인 것을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던 청년 바리세인 사울이며, 그는 당연히 가르침을 받은 대로 모세의 율법과 미쉬나와 탈무드에 나오는 대로 율법을 지키며 살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바리세인으로서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사울은 멸시하며 능욕하고 더나가서는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스테반 같은 사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율법의 수행자로서 사도행전 8장 1절에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한것 같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생도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 시므온의 부친으로 알려진 힐렐(Hillel)은 주전 60년에서 주후 20년까지 당시의 민간에 구전된 율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탁월한 학자입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출생하여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힐렐은 고대 이스라엘의 율법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팔레스틴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시므온의 부친 힐렐은 성전 운영위원회의 최고 우두머리인 나지(Nagi)직에 위임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운영을 위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대 최고 법률 해석가인 쉐마이어(Shemaiah)와 아브탈리온(Abtalyon) 문하에서 이스라엘 율법을 연구하여 소위 ‘힐렐 7원칙’을 논리적으로 확립하여 후세들에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P힐렐의 아들은 성경에 누가복음 2장 25절의 말씀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라고 소개된 율법학자이며 이 시므온은 1세기 당시 예루살렘 최고의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아버지입니다.
가말리엘의 부친 시므온은 희브라어로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의미이며.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인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습니다.
부친 힐렐 때부터 가문 대대로 내려온 경건이 몸에 밴 신실한 인물이었으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날 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탁월한 학자 7명에게만 부여하는 ‘라반’이라는 칭호를 최초로 그에게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시므온도 자신의 부친 힐렐의 신앙과 신학을 그대로 본받아서 탁월한 학자요, 신실한 성도로 그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기 전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반드시 출생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으로 약속받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참 메시아를 마음으로 기다리며 늘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무엇보다 성령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며 시므온은 그날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고, 마침내 할례를 받기 위해 성전에 들어선 메시아를 두 팔로 직접 안을 수 있는 인간 최고의 영광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지난 날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며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갓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가 만민을 위해서 예비 된 이방의 빛이요,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큰 영광이라고 큰 소리로 찬송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은 조부 힐렐을 그대로 빼어 닮아 바울 당시 예루살렘에서 최고의 유대인 율법학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큰 덕망을 지닌 학자로 인정받았습니다.
행 5:34-40에서 산헤드린의 멤버들은 가말리엘의 박식함과 웅변술로 위험에 처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놓임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학자 가말리엘은 그의 조부 힐렐에 이어 이스라엘에 신바리새파주의를 출발시킨 장본인이 되었으며. 이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해 수준 높은 영성을
지닌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P동방정교에서는 가말리엘이 자신의 제자인 사울이 스테반을 죽인 것에 알고 스테반을
시신을 잡고 있는 그림을 그렸으며 동방정교에서는 가말리엘을 성자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유대인들의 인터넷 인싸이코피디아에도 기록되었으나 그곳에는 가말리엘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바리세인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핍박자
지금까지 바울의 선생인 가말리엘과 아버지인 시am온 그의 할아버지 힐렐에 대하여 말씀드린 것은 바울이 어떤 영향을 그들로부터 받았으며 바리세인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알아본 것입니다.
사울은 바리세인으로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교회는 사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고신파 바리세인인 것입니다.
한국에도 장로교중 고신파는 많은 하지 말아야 하는 규례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신파 바리세인인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만 들어도 화가 나고 어떻게 하면 그리도인들을 없애버릴까? 노력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초대교회의 7집사중 하나인 스테반이 유대인들에게 중상모략을 당하여 산혜드린에서 설교한 후 사울은 유대인들의 선두에서 스테반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바로 사울입니다.
성경에 헤롯왕과 빌리도는 원수지간 이였으나 예수님을 정죄하는 데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기록한 것과 같이 바리세인들과 제사장의 무리인 사두개인은 서로 앙숙인 사이이지만 예수를 죽이고 그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데는 힘을 합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종교의 지도자인 대제사장의 위임을 받고 유대만이 아니라 외국인 다메석까지 가서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후송하여 처벌하게 하려고 다메석 까지 같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증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P[행 26:9-11]
(9)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11)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p[갈 1:14-갈 1:14]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가말리엘)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미쉬나와 탈무드)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신념이 있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바리세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아니할까요?
사울은 성령이 충만한 것이 아니라 혈기와 신념이 투철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사랑하고 종교의식에 빠져 외식하는 자들이고 독사의 자식 즉 사단의 자식이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특히 성경을 좀 안다고 하는 목회자나 저와 같은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경고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은 성경지식이나 신학을 전공한 사울과 같은 사람들만이 자신의 신념에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성경을 모르는 것으로 인해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생각을 관찰시키고자 고집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 역시 자신의 신념에 빠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념이 다 나뿐 것은 아닙니다.
신념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신념을 하나님의 성령에 인도하심을 받으면 놀라운 신학적 발전을 가져 올 것입니다.
종교개혁을 가져온 마틴 루터와 같이 아무리 교황이 교리적으로 말하고 힘으로 밀어
부치려고 하여도 로마서를 통해 까닭은 믿음으로 만이 구원에 이른다는 신념에 사로 찹혀 종교의 암흑기에서 개신교를 이끌어내는 놀라운 신념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사울의 신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바울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합니다.
신앙에 대한 사전의 뜻은 믿고 받드는 일, 또는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를 신뢰하고 복종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신념은 시작이 나이지만 신앙은 시작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신념은 내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면 신앙은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 주시고 그를 믿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신념의 사나이에서 신앙인으로 변화 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처치하려고 다메석으로 가던 도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셔서 사울이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P스테반의 사건이후 다메석에서 예수님을 만나 신앙인 되기까지 한 3년이란 시간이 있습니다.
사울은 유대와 갈릴리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열심히 박해하고 이제는 시리아에 가서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처단하려는 신념으로 대제사장들의 위임받고 가던 중 12시쯤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고 엎드려져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울은 넘어져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나이까?
사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것을 들었으며 예수께서 죽은 것을 믿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였다는 것을 전파한다는 것을 들었고 또 스테반의 간증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던 그는 예수의 이름을 모욕하게 하는 말을 하게 강요했으며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은 그들의 믿음을 포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울은 그런 짓을 3년간이나 하다 이제 임자를 만난 것입니다.
죽은 것으로 확신했던 예수가 사울이 주여 뉘시나이까? 란 질문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죽은 줄 알았던 예수가 지금 자신과 말씀하는데 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이는데 한목을 한 스테반이 하던 말과 같이 하늘에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사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이제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깨닭고 하는 말이 “주여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제 사울은 자신이 박해하던 사람들의 편에서 예수의 종이 되기로 자신의 마음에 확정하고 예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하는 모습을 가졌습니다.
사울의 신념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P그는 직가라는 거리에 기거하면서 음식과 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금식기도에 열중하였으며 기도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자신을 안수하여 보게 하는 것을 계시로 보여주셨습니다.
같은 시간에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시어 직가에 가 사울을 만나
라고 하셨으나 아나니아는 두려웠습니다.
사울에 대한 소문이 아나니아와 모든 다메석에 있는 성도들에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순종하였듯이 아나니아도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 사울 만나 그에게
당신이 만난 분이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이며 자신을 보내 보게 하고 또 세례를 주어 성령에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그를 치유하고 또 세례를 주어 예수그리스도의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P사진은 아나니아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신념의 사람인 사울이 이제 예수님의 직접계시를 통해 예수님의 사도로 세움을 입고
신앙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신앙의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여야 합니다.
신념의 사람은 거듭나지 아니하여도 강한 신념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도 많은 거듭나지 못한 신념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만이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P 사진은 바울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념이란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력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신념과 신앙은 어떻게 다른가요?
뭐 쉽게는 글자 한자 차이입니다.
그러나 신념과 신앙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신념으로 종교생활이나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였다고 다 신앙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봉사하고 성경지식이 해박하면 신앙이 좋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바리세인으로서 사울이 바로 그런 사람 이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사랑하고 열심을 내어 살아가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힐난하게 질책하셨습니까?
P마 7:22 보시겠습니다.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첫째 한 두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라고 하십니다.
둘째 ‘주‘라고 예수님을 부르길 5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주’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의 황제를 ‘주’라고 불러야 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을 나의 ‘주’라고 부르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 그들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며 목사와 같이 말씀을 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를 하였다고 예수님께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하고 계신가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성도 여러분!
이 사람들은 세상에 살면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섬기며,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헌금도 열심히 하고, 더나가서는 전도는 물론 선교에도 열심을 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던 사람들이 정작
세상을 하직하고 자신들이 전하고 사랑하던 예수님께 가서는 자신들이 주님이라고
부르던 예수님께서는 모르신다고 하시며 나를 떠나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무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은 이런 무리에 속하지 아니한가?
신중히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요?
베드로전서 1장 9절 말씀이죠.
P“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능력을 행하고, 세상 사람들이 성자라 불러도 주님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는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한 모든 것이 ‘꽝‘이 되는 것입니다.
Do you know what '꽝‘ is?
This is ‘꽝‘
If your life is not in the Jesus Christ!
your whole life will be '꽝’ at the end.
죠엘 오스틴은 목사입니다.
그가 신학을 정공하지는 아니했다고 합니다.
죠엘 오스틴은 목사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신념의 사람입니다.
그의 신념은 무엇인가요?
그는 궁정적인 생각으로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결국 하나님께 나가는 길은
같다는 종교 다원주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코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신 말씀과 베드로가 전한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다고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한 자들” 이라고 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사울과 같이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기는 했지만 신념만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입니다.
신념을 가지고 섬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신념이 없이는 목회나 선교나 주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할 수는 있으나 결과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신념은 우리에게 힘을 부여하고 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신앙에 바탕을 두지 아니하고 신념 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바리세인들과 같이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로 빠지게 됩니다.
사울이 신념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종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섬긴 것 같이 우리도 신앙의 바탕에 신념을 가지고 바울과 같이 우리의 주되신 예수를 섬김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아 주님께서 잘했다 칭찬 받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우리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