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4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19편 41-43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뢰함이니이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시 119:41-43)"
May your unfailing love come to me, O LORD, your salvation according to your promise; then I will answer the one who taunts me, for I trust in your word. Do not snatch the word of truth from my mouth, for I have put my hope in your laws.

지금 시인은 말씀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바라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임의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다른 표현으로는 '말씀에 따라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라는 이 고백에서 약속의 말씀을 의지해서 담대함을 얻고자 하는 시인의 진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인은 "나를 훼방하는 자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훼방하다'라는 말은 '조롱하다' 혹은 '욕하다(taunts)'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롱하기를 그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 주위에 항상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대적들의 훼방을 가장 잘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우리 입에 대적의 훼방에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말을 체워주실 것입니다.

시인은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고 소망합니다. 여기에서 "조금도"라는 말을 '너무 오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우리의 마음과 입에서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성도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악인들의 훼방에 적절하게 응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돌발적인 상황을 만날 때 흔들리고 마음의 냉정을 잃는 경우가 있음을 스스로도 간혹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성도의 신앙을 상실하지 않게 유지해 주십니다. 이를 우리는 체험을 통해 경험하고 있으며 또한 믿고 있는 바 입니다.

우리는 한국컴퓨터선교회(KMC)의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신앙"이라는 글에서 성도의 신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실제의 예를 보게 됩니다. "어느 날 조산관이 그의 아내를 불러 내더니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도하지 말고 이리 나와 우리 앞에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해봐'라고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이 때에 그 자매는 오히려 그들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담대함을 얻어 큰 소리로 힘있게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 조사관들은 그 기도에 감동이 되었던지 '조선에서 너만큼 똑똑하고 용감한 여자를 보질 못했다. 너는 아무리 하나님을 못 믿게 하여도 막을 수 없는 @@@이야'라는 욕설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 종종 그녀를 불러내어 그들 앞에서 '어디 다시 한번 큰소리로 기도 해봐'라고 하더랍니다. 그 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담대하게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http://kcm.co.kr/mission/map/Asia/Northkorea/data/nk0009.html)." 오 예수님! 북녘 땅에서 고난받고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주님의 말씀에 붙들려 대적들의 훼방을 누르고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하여 주소서. 하루 속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북녘 땅에서도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소서.


(존 칼빈 주석/ 시 119편) "선지자는 이 말씀 속에서 자신은 마땅히 필요한 만큼 항상 담대하거나 굳세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인해서 사실상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음을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마음의 생각도 아님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입을 열어 주셔야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담대한 영을 거두어 가시면 그 순간부터 우리의 마음은 연약해지거나 넘어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도 말을 잃어버린다." 

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19편 36-37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시 119:36-37)
Turn my heart toward your statutes and not toward selfish gain. Turn my eyes away from worthless things; preserve my life according to your word.

시인은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증거'라는 말은 다른 번역에서는 '언약' 혹은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선 시인은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를 올바로 진단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즉 우리의 마음은 악에 쉽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하는 소망을 주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올바른 법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의 말씀으로 향하는 마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인은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에서 "허탄한 것"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구 곧 부, 권력, 명예 등의 세상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탐욕을 쉽게 쫒는 지를 잘 알게 합니다. 시인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매일의 삶에서 승패가 어떻게 판가름 나는 가를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이 승패의 결정은 '우리의 눈을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주의 말씀으로 향하느냐' 아니면 '허탄한 것으로 향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허탄한 것을 쫓아 멸망의 길을 가게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쫓아 생명에 이르게 해 주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다른 한글 성경 번역은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는데, 그 의미가 보다 쉽게 이해 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소성케"라는 말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일을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주의 말씀으로 인도되는 길만이 "허탄한 것"에서 우리 마음을 돌이켜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길임을 시인은 체험으로 확증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주민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아직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북한인구의 0.1%에 해당되는 2만5천여 탈북민들이 남한에 살고 있지만 이들의 생활은 여전히 힘들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함께 어울려 제대로 사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취지문>- 다양한 영역에서 이미 온 통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 발랄 커뮤니티 -2013.10.3). 오 예수님! 우리 마음을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하여 주시고 주의 말씀으로 향하게 하여 주소서. 주의 말씀으로 상한 마음과 몸을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온전히 하나되게 하여 주소서.


(존 칼빈 주석/ 시 119편)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감각은 허무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연단과 교정을 거치지 않고는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데서 멀어져 있는 것이 조금도 놀라운 일이 못 된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선지자는 앞절에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부패함이 자리잡고 있음을 말한 다음, 이제는 외부적인 감각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탐심이라는 질병은 우리 마음속에만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온 몸에 퍼져 있어서 눈, 귀, 발, 손이 그 악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패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뜰 때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지 않으면, 마귀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도록 두 개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2014년 2월 3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18편 22-23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시 118:22-23)
The stone the builders rejected has become the capstone; the LORD has done this, and it is marvelous in our eyes.

시인은 '집짓는 자들'이 쓸모가 없어 한 돌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 '버린'이란 말은 '내쫓다'는 보다 강한 뜻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건축자는 사용할 수 있는 돌과 사용할 수 없는 돌을 거의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일에서 큰 손실이 있을 것이니, 일을 올바로 하는 전문가들이라고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축자들이 귀하게 쓰일 수 있는 한 돌을 잘 못해서 버렸다는 것이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건축자들의 단순한 실수로 인함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시인의 고백인 것 같습니다. 즉, 세상을 잘아는 건축 전문가들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로 쓸모 없는 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건축자들에 의해 버려진 돌이 그냥 버려지지 아니하고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으로 부터 쓸모없어 버려진 한 돌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모퉁이의 머릿돌(the capstone)로 사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과 그 무리들에게 내쫓기며 여호와의 백성들 중에서 버려졌던 자신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했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비유로 이 시편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마 21:42). 우리는 이 기이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긍휼 그리고 끝없는 사랑을 느끼며 놀랍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해할수 없는 그 무엇인가의 기이함을 느끼며, 두려움에 놀랄 것이라고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 예수님! 오늘도 남녘땅과 북녘땅 그리고 이방땅에서 나그네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기이하고 놀라운 은혜가 임하게 하여 주소서.


(존 칼빈 주석/ 시 118편) "다윗은 이 귀절에서 자기를 부당하게 그리고 불의하게 공격하는 중상에 대해 담대하게 모욕을 주고 있다. 다윗은 모든 고귀한 자들과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정죄를 당할 기미가 있었기 때문에, 악하고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만연되었다. 다윗은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자세하게 논박하면서, 그러한 자들 중 특히 지도급에 있는 자들 앞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입증하고 있다. '내가 높은 자들에게서 배척당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을 주관하는 왕이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볼 수 있도록 선택받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다윗은 적절하게 자기를 '돌'에다 비유하고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을 '주요 건축자들'에다 비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