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 묵상 116편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 116:1-4)

시인은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라고 자신의 고난 중에 겪었던 체험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시인의 마음과 입을 열어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고백할수 있게 했습니다. 고난중에 있던 시인의 입에서는 기도의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러한 자신의 기도를 "음성"이라고 표현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시인의 간구들뿐 아니라 흐느끼는 신음소리 조차도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음성과 간구들을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수 있었을 까요? 아마도 간구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가지 기이한 구원의 체험들이 시인에게 확신을 갖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인의 인내입니다. 시인의 이 고백을 스펄전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는 거듭하여 여호와께 나아갔다. 이 때문에 그는 '내 간구들'이라는 복수형으로 표현한다. 그가 여호와께 자주 나아갔던 만큼, 여호와께서는 그를 자주 영접해 주셨다. 그 분은 그의 상한 부르짖음과 보다 체계적이고 균형 잡힌 그의 간구들을 모두 들어주셨다. 즉, 그것들을 받아들이시고 또한 응답해 주신 것이다" (찰스 스펄전 시편강해/ 시 116편).

시인은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라고 말하고 동시에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라고 말합니다. 시인의 이 고백에 대해 칼빈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자기가 앞에서 말했던바 하나님으로부터 비참하게 버림받은 것으로 보일 때가 하나님께 기도드리기에 적합한 때요, 좋은 때임을 확증하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 고난 중에 여호와께서 은혜로 배푸신 자비하심에 대한 체험을 분명하게 기억하며 즐거워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오늘도 고난 중에 처해 있는 성도님들의 음성과 간구가 하나님께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 음성과 간구가 예수님께 들려졌다는 확증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기까지 인내할수 있는 은혜 주시길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 116편) "다윗이 '내가 저를 사랑하는 도다'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의 존재가 없이는 그에게 아무것도 기쁘거나 유쾌한 것이 없음을 뜻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의 인도하심과 지켜 주심 아래 자신을 전폭적으로 드리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유익들 중에 그 한 부스러기조차도 얻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09편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그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시 109:30-31)

시인은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라고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여호와를 찬양함은 기이한 구원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무리 중에서" 선포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로 부터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어떤 고난의 자리에 홀로 서야 했는 지도 모릅니다. 아무런 세상적인 도움을 받을수 없이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시인의 처지가 참으로 난감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시인의 대적들은 모든 세상적인 도움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외롭게 된 시인을 둘러싸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가 "궁핍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빈곤함 뿐만이 아니라 곤란에 처한 심령의 곤고함을 강조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인은 바로 그 재판의 자리에 하나님께서 그의 "우편에 서사" 함께 하셨다는 기이한 체험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고난의 자리에서도 자신의 마음에 평안을 유지할수 있었던 구원의 간증을 "무리 중에서" 말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와 비슷한 체험을 시인은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시 37:33)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 자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구원 받을수 없는 재판의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시인의 오른편에 함께 하셔서 대적의 의도를 무색하게 만드셨습니다. 또한 재판관의 마음을 온유하고 부드럽게 만드셨음이 분명합니다. 시인은 그 재판으로부터 정죄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우심의 손길을 통해 주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더욱 더 믿고 의지하며 찬양하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궁핍한 영혼을 "판단하려는 자"의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은혜의 손길을 보내사 우리 성도님들을 고난중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편 109편)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다윗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자기를 포기하고 버리사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실 때라도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에게서 적절한 때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다윗이 당한 가난과 환난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과 인자를 거두어 가셨거나 숨기셨던 것인만큼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으로 여길 만한 것이었다. 다윗은 환난과 곤고함을 당하는 도중에 이렇게 멀어져 있는 광경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에게 도움 주시기를 그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09편

"나는 또 저희의 훼방거리라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 (시109:25-26)

시인은 "나는 또 저희의 훼방거리라"고 하나님께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훼방'이란 말은 '경멸' 혹은 '수치'라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아무리 허망했고 죄악으로 가득찬 삶이었어도, 이 삶이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정말로 곤욕스러운 처지임이 틀림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시인의 경우 자신의 허물로 인함이 아님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야 얼마나 그 마음의 상심이 더 크겠습니까?

또한 시인은 "저희가 나를 본즉 머리를 흔드나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가까운 친구로 사귀던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머리를 흔들며 시인이 당한 고난을 보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처지의 시인에게 있어 내적으로 느끼는 '죄의식'보다 더 깊은 영혼의 상처가 되는 것은 어쩌면 '수치심'이었을 것입니다. 이 '수치심'을 최대한 자극하여 시인을 깊은 어둠으로 몰아 넣으려는 대적들의 의도가 그 근저에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세대에 있어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세상의 표현으로 말하면 '왕따'라고도 합니다. 이 세대가 한 가련한 영혼을 '왕따' 당하게 하는  것은 '수치심'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죄의식'보다 '수치심'이 더 깊은 영혼의 상처를 줄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수치심'을 주어 한 어린 영혼을 자살로 몰아 갔던 마음아픈 이야기들을 우리는 간혹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슬픔 속에서도 시인이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호소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였음이 분명합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 이 슬픔이 변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될수 있음을 한 신학자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기쁨을 선도하는 슬픔은 슬픔을 뒤따르는 기쁨보다 더 바람직하다. 가벼운 슬픔은 수다스럽지만, 큰 슬픔은 벙어리가 된다. 우리의 슬픔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우리의 비극을 통해 하나님을 보자. 우리의 슬픔마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투자하자."(손바닥만한 신앙수필/김호식). 오늘도 대적들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훼방으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위로의 말씀이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편 109편)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선포했던 저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견뎌 낸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고 쓰라린 일이다. 율법은 율법을 멸시하는 자들을 가리켜 말하는 "네가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신 28:37)고 한다. 다윗은 이러한 종류의 시험을 받은 것이다. 다윗은 또 자기가 정죄를 받은 사람으로 여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잔인한 조롱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담당해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셨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09편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나의 찬송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저희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거짓된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시 109:1-4)

시인은 하나님에게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대적들의 악한 거짓말로 인해 심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침묵하심은 시인의 심령에 더 큰 고통과 불안을 갖게 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시인의 대적들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 시인을 공격했습니다. 이들은 마치 사자가 먹이를 집어 삼키려고 하듯이 시인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시인은 매우 곤고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사악한 자들은  "거짓된 혀로" 쉴 사이 없이 시인을 둘러싸며 놀려 댑니다. 이들은 분노와 질투 그리고 헛된 스스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인에게 거짓된 말을 합니다. 즉, 거짓된 혀는 자신들의 거짓말을 스스로가 느끼기에 정말인 것 처럼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악한 자들의 혀에는 무서운 독이 가득 담겨있어서 외롭게 된 시인의 영혼을 괴롭게하고 상처입혀 피흘리게 했습니다.

이제 시인은 "나는 사랑하나"라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그들을 늘 우정으로 대해 왔었습니다. 이에 반해 그들은 이 우정을 전혀 기억하지 않고 그들의 헛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시인을 원수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대적들의 거짓된 구설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야만 했던 유대 민족의 처참한 상황을 목도하며, 슬픈 마음으로 고백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기도를 기억나게 합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오늘도 대적들의 거짓된 혀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는 성도님들에게 예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특별한 말씀의 위로가 임하기를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존 칼빈 주석/ 시편 109편) "이러한 종류의 싸움은 하나님께서 매우 흔히 그의 자녀들에게 당하게 하시는 것으로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단이 공개적으로 격렬하게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격하는데, 그는 본래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놀라운 속임수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무고한 비방을 퍼부어 마치 그들이 사람들 중에 가장 버림받아야 할 자들인 것 처럼 그들의 평판을 깎아 내린다. 다윗으로 예표되었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환난에 뒤따르던 것이 매일 성도들 안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골1:24).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을 부르사 자기의 고난에 동참하여 이것을 같이 나누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3일 화요일

정요셉의 시편묵상 108편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시 108:1)

시인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정해지면 주님에게 고백하라고 시인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믿음의 감동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내 속에서 작은 음성으로라도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때 지체없이 시인처럼 입을 열어 정해진 그 마음을 하나님에게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작은 음성의 고백을 들으시고 더욱 크고  확고한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굳혀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우리의 마음을 주님은 기뻐 받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또한 시인은  "내가 노래하며”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정해지자 곧이어 시인은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시인의 마음이 정해진 것은 보이지 않던 내부적인 변화였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화된 마음이 노래로 드러나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인처럼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의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높이는 노래를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는 믿음 주심에 감사함으로 입을 열어 찬양하며 주님의 은혜에 스스로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메튜 헨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먼저 마음을 정한 상태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 이리 저리 방황하는 생각의 단편들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메튜 헨리 주석/시 108편)

이제 시인은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를 다른 시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 103:1). 찬양의 노래가 자신의 입을 통해 밖으로 흘러 나옴을 느낄때, 동시에 시인은 자신의 깊은 심령에서 찬양이 울려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의 영혼 그윽히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이 그의 입을 통해 밖으로 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찬양을 듣는 이와 시인의 심령이 동시에 주님의 사랑안에서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님들의 심령으로 주님을 높여 찬양하는 소리가 온 세상에 널리 퍼지도록 예수님께서 은혜 주시길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찰스 스펄전/ 시편 강해/ 시 108편) "수많은 전쟁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많은 염려가 나를 이리저리 흔들지라도 나는 오직 한 마음이며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마음을 정했고 단 한 가지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변덕스러운 나의 본성을 정복하셨기에 이제 나는 분명하고 확고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