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 마태복음 2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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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마26:17)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26:18)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지난주에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날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날과 부활절에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례인 병욱이의 세례식과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날 마지막 만찬인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저의 두 번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며 그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시고 또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우기 위하여 고난을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는 그 고난이 왜왔는지 아니면 언제 끝나는지 모릅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앞에 설 때까지 끝나지 아니하는 고난이 있는가 하면 몇 일 고생하면 낳는 고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은 우리가 계획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는 뜻이 있기에 그 뜻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우리는 고난을 통과해야 하며 고난 가운데 우리는 인내를 배워 예수님과 같은 성품으로 닮아 갈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당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또는 언제 어떻게 고난의 때가 끝날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시간표 즉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제가 경험한 기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적..........
예 기적입니다.
우리가 기적하면 자연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죽은지 4일된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라던가 아니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5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것이나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오게 하신 것 등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놀랄만한 기적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삶 가운데 느껴진 기적입니다.
그러니 너무 기대는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니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 나도 그런 기적을 체험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가운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제가 평상시와 같이 가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장을 내다보니 예전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시던 양장로님과 그의 따님이 오시어 빵을 사고 계시어 나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양장로님께서는 85세가 되셨을 때이며 치매 증상이 있으셨으나 우리가계에 자주 오시어 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셨습니다.
그날도 평상시와 같이 학교 수업이 있어서 학교에 같습니다.
수업은 평상시에는 10시에 끝나 집에 오면 보통 10시 15분정도인데, 교수님께서 다음주가 종강이라 오늘 기말시험을 보겠다고 하시어 시험 보느라고 10시 반이나 되어서 수업이 끝났습니다.
오는데 평상시 보다 귀가 시간이 늦으니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 곧 도착한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으며 우리 집 근처의 길은 공원묘지가 있고 그 옆으로 보도와 양방으로 가는 차선이 꼬뿔 꼬뿔하게 되어있습니다.
거의 집에 다 오는데 기분에 길에 무엇인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중앙선을 넘어 지나쳤으며 좌회전을 하면 집 앞인데 “한국 사람이다.” 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집에 다 왔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자 생각이 들었으지만 “아냐 돌아가 봐야겠어“ 란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지역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착각이였군” 하고 가는데 길에 누군가 쓰러져있는 것입니다.
아이코 내가 사람을 치었구나.
하고 앞에 가서 서니 어라 그 사람이 바로 아침에 보았던 양장로님이셨습니다.
“장로님 왜 여기 계세요? 다치지 아니하셨어요.”
여쭈어 보니 다행이 다치신데는 없으셨습니다.
“어 자내 나좀 집에다 데려다죠.”
하시며 일어서시어 차에 오르시려고 하는데 차가 뒤에 있기에 손으로 지나가라고 하고 보니 뒤에 경찰차가 보고 불을 빤짝였습니다.
나는 경찰에게 이분을 내가 아는 분인데 집에 모셔다 드릴려고 한다고 하니 잠깐기다리라고 하고 무전으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이분이 길을 일어 가족이 찾는데 당신이 잘 알면 지금 가족이 조지메이슨 앞 맥다놀에 있는데 모시고 갈수있느냐고 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때를 묘사할 때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란 헬라어를 사용합니다.
또한 시간이란 단어인 “호라”를 사용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헬라어 크로노스는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매순간, 매일, 매달, 매해를 묘사 할 때 크로노스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크로노스는 구약성경 역대상.하를 영어로 크로니칼 즉 시간적인 흐름을 따라 일어난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래서 역대상 1-8장 까지 지루하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들어보지도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들이 계속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자손을 낳고 죽고 또 낳고 죽고 하는 크로노스적 시간에 이루어진 사건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P예를 들면
(갈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에서 때가 차매를 크로노스로 사용합니다
카이로스도 시간적인 개념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크로노스와는 달리 카이로스는 포괄적인 시간관 내지는 삶 가운데 의미가 있는 시간 또는 사건이나 시간적인 의미에서 충만한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성경의 예를 들며 다음과 같습니다.
(요7:8)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마26:18)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계22:10)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갈라디아서 4장이나 요한복음 7장 마태복음 26장등 우리성경에는 모두 “때”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의 때는 시간적인 의미에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크로노스적인 시간에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카이로스적인 때는 하나님께서 인간 삶 가운데 개입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관계에서 시간적인 때를 의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이 인간들의 시간에 오시어 그의 뜻이 완성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때가 가까웠다고 하실 때 크로노스란 단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카이로스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완벽하고 충만하게 이루질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리첸테션을 통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생각해보겠습니다.
P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에 회복 되어 영원이 지속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탄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만드시고 크로노스적 시간이 흘러가는 가운데 맨 마지막
창조물로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함께하며 세상을 살아갔으며 그에게 주어진 일이란 세상을 다스리고 번성하여 세상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먹는 날에는 정녕죽을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행위언약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지키면 영원이 죽지 아니하고 생명과를 먹으며 영원히 살수있던 존재였으나
어디 그것이 쉬운 일입니까?
결국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단은 하와를 잘 꾀어 결국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대적
하고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빠진 아담에게 새로운 언약을 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회복되게 할 것이며 그 여자의 후손은 사단의 머리를 박살내고 사단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P사람들은 그 여자의 후손이 어떻게 언제 누구에게서 태어날 것인지 항상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첫 아들을 낳고 혹시 이아이가 그인가 하여 가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는커녕 자신의 동생을 때려죽이는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P그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악한 것을 보고 결국 노아의 홍수로 노아의 가족 8명을 빼고는 모조리 수장시키시었습니다.
노아의 대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다시 한번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 언약은 아담의 언약과 동일한 것으로 인간 세상에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을 다시 한번 약속하시고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언약을 하십니다.
P
P그 후 크로노스 시간은 흘러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는 사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 사라도 무던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시길 네가 거주하는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실것과
그의 하나님이 되실 것, 그리고 자식도 없는 아브라함이 땅의 모래의 수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이 있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거짓말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75세에 약속하시고 카이로스의 시간이 된 100세에 아들을 주시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십니다.
P카이로스라 함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여성이 임신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13-15년이 지났으며 카이로스적인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죽은 몸같은 태에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노아에게 약속하신 언약이 이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아브라함의 아내에게 때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인 구원의 사역이 이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P이삭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으며 두 아들 중에 사기꾼과 같은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카이로스적 시간은 이어져가며 야곱의 12아들 중 제일 멋있는 아들을 통해서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시고 큰 민족을 이루는 시간이 430년이 걸려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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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이제 이스라엘은 나라로 탄생하고 모세의 언약을 통해 땅과 국민 그리고 주권이 있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며 그가 구원을 이루실 카이로스적인 때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P이스라엘은 국가로 세워지고 왕이 등극하여 이제 어엿한 나라로 발 돋음하며 이웃나라에게 조공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나라인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다윗왕을 세우시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급하여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초 대왕으로 세웠으나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왕이였으며 그후 다윗왕은 이새의 8째 아들로 태어나 보잘것없는 사람 이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갈 것을 계획 하십니다.
P P P
하나님께서는 다윗왕에게 너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사무엘하 7장에 언약하시면서 그의 아들가운데 하나님의 뜻인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시고 엘리야선지자을
P위시하여 말라기 선지자까지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 구원자인 메시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의 탄생---
휴....
들으시기도 힘드셨죠!
저도 4500년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 5분 만에 마치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 시간대에 오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지는 시간인 카이로스 때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엔 없는 아담과 하와에게 소망을 주신 카이로스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새로 시작하셔도 별문제가 없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반역한 죄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시고 다시 시작하셔도 하나님의 공의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 가운데 오시어 그들과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죄에 빠진 하나님의 자식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제 파워포인트를 보시기 바랍니다.
P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처음 언약은 행위언약입니다.
먹지 아니하면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언약을 지키지 못하자 하나님께서는 은혜언약을 세우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첫째 여자의 후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다 남자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5장 그리고 역대상 1-8장까지 이것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인류를 구원할 자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약속하시며 그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사단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 여자의 후손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때와 같이 노아의 홍수로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시고 새로 시작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면 아담과 맺은 언약은 이루어질 수 없기에 다시 노아와 아담의 언약을 갱신 renew 하십니다.
노아의 언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9장 1절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첫째 아담과 하와 같이 복을 주시었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시었으며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이 언약을 7절에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 언약의 표로 주신 것이 무지개입니다.
노아가 받은 언약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계시 하시어 그에게 더 구체적으로 주십니다.
창세기 12장 1-2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7장 4절에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바꾸어 주시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며 21장 12절에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라”
바울은
P(롬 9: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행 3:25
(25)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씨는 누구인가요?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컬어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시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에 구원의 축복을 주실 예수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1절은 이것을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하고 있습니다.
P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신 여인의 후손과 아브라함의 씨이시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중간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약속하신 나와 같은 선지자이시고 다윗왕의 왕위를 영원이 이어갈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탄생하실 것을 4500년의 크로노스 시간이 흐른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이루시기 위하여 카이로스 시간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카이로스 시간이 차매 그의 아들을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며 회개를 외치자 혹시....메시야가 아닐까?
란 생각을 하여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보내 그에게 물어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자 그들은 신성모독죄를 붙여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으며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4500년 전부터 예정하신 여인의 후손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람들이 생각해서 만들어낸 일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생명으로 P인도하시기 위하여 카이로스의 시간 때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이사야, 예례미야, 스갸랴 ,말라기 선지자와 같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카이로스의 시간에 이루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차매 주님께서는 죽은지 3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가
이제 마지막 카이로스가 차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제가 경험한 작은 기적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기적은 무엇인가요.
기적은 크로노스 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크로노스 시간에 카이로스의 시간이 만날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 기적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장로님께서는 아침에 따님과 함께 따님께서 지위하는 음악회에 가시기 위하여 빵을 사러 그날 오신 것입니다.
장로님께서는 그래서 평상복이 아니라 화려한 옷을 입고 눈에 띄게 하고 오셨습니다.
그날 저녁 시험이 없을 시간에 별안간 시험을 보았으며 평상시보다 30분 늦게 귀가였습니다.
양장로님께서는 그날 조지메이슨에서 있는 음악회에 참석하셨다가 지루하시어 딸에게 아무 말도 없이 혼자 음악회에서 나와 버스로 아파트로 가려고 길을 나섰으나 장로님이 치매가 있으셔서 밤늦은 시간에 걸어서 2-3마일을 오신 것입니다.
저는 장로님께서 어디 사시는지 잘 모릅니다.
단 아는 것은 Alexandria 노인아파트에 혼자 사신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께서 버스가 없는 시간에 걸으면 아파트에 까지 적어도 5-6시간을 가셔야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날 시험이 없었다면 저는 장로님을 길에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마 큰길로 오시고 있었을 것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장로님께서는 두-세 시간을 걸어서 우리집 근처까지 오신 것입니다.
우리집 앞 차도는 길과 보도가 조금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아침에 산책을 많이 합니다.
장로님께서 보도로 걸어오셨다면 저는 그냥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님께서는 차도를 따라 걸어오시어 커브길에서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중앙선을 넘지 아니했다면 나는 차로 장로님을 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아침에 장로님께서 입으신 화려한 옷을 보지 못했다면 집 앞까지 같다 다시 돌아오지도 아니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장로님을 만났을 때 경찰이 단 1분만 늦게 왔어도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저는 장로님을 모시고 어딘지도 모르는 아파트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며 그 때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따님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카이로스 시간에 정확하게 장로님을 돕기 위해 저의 삶과 시간을 맞추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우연의 일치라고 하겠죠.
로마서 8장 28절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크로노스 시간대에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시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재미있는 성경구절을 한절 보겠습니다.
P출애굽기 12장 40-4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급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 430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급 땅에서 나왔다”고 하십니다.
마치는 그날은 무슨 날일까요?
제 생각에는 430년 전 야곱이 그의 식솔 70명을 데리고 애급에 있는 요셉을 찾아간 날이라고 생각됩니다.
확률로 보면 일년 365일 X 430년=1/156,950 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사람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요?
성도여러분!
요사이 힘드시죠!
저도 힘듭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한 것은 별 볼일 없던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시고, 별 볼일 없는 양치기 소년을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죽이고
왕이 되게 하시고 그의 자손에서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를 주시것을 말씀하시었으며 때가 차매 다윗왕의 아들로 예수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우리가 지금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주님을 바라보고 인내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잘나가고 돈 잘 벌고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도 결국 크로노스 시간대에 매여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부활주일은 지났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이 우리 신앙과 삶의 모든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신지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 때 죽으신 예수와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니 그 예수와 나와 상관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를 피할 수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택하시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로 예정하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2000년 전에 지키신 것입니다.
특별이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크로노스의 시간대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카이로스 시간에 맞추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대충 6500년 이상 되었을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베드로후서 3장 4절에 말씀하신 것 같이 우리는 2000년 전에 죽으신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의 카이로스 시간대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당시 시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보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제가 경험한 작은 기적들을 하나씩 체험함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와 뜻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며 신앙생활을 하시길 바람니다.
P
이사야 60:22에 “카이론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까?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 답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인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단 우리는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에 근신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5처녀와 같이 기름을 준비하여 크로노스 시간대를 살아가면서 카이로스 시간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죄를 위해 이틀 전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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