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누구인가?
바울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에 대하여 아는 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바리세인으로 스테반집사를 돌로 쳐죽일 때 앞장섰던 사람.
다메석으로 가다 오후 12시 경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고 눈이 멀고 주님을 뵙고 예수님의 종이 되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로마에서 죽은사람.
또는 신약성경을 반정도 쓴사람...
또 바울에 대하여 무엇을 아시는가요?
베쟈민족속... 바리세인...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 또.....
그의 고향은 어디인가요? 다소.... 어느지역입니까? 길리기야 지방..
또 무엇을 아십니까?
음......... 4차전도 여행으로 많은 교회를 세우고 유럽을 복음화 한사람..........
와......... 많이 아십니다.
그럼 성경에서 나를 본 받으라 고 한 사람은 몇 명일나 될까요?
예 제가 알기로는 모세도 그런 말을 하지 아니했고 사무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다윗역시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습니다.
목사님 제가 맡습니까?
그러나 유독 바울 사도는 나를 본 받으라! 는 말을 세 번했습니다.
P한번 보시죠.
(고전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요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았다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내가 행한 것 같이 하기 위해 본을 보였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쓴 많은 선지자와 학자, 왕, 제사장, 사도들과 많은 성도들이 나오지만 오직 예수님을 빼고는 바울사도만 나를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조금전 저는 바울사도에 대하여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모두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바울의 배경이나 그의 사상 그리고 가르침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바울에 대하여 알고 있을까요?
사실 바울에 대하여 공부를 한다면 박사 학위를 15개 받아도 모자를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바울신학과 바울 서신 등 여러 과목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성경을 읽으면서 바울에 대하여 설교를 준비하려고 보니 바울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사전 program에 바울 하고 입력하였더니 자그마치 18장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또 internet에 들어가 바울 하니 신학적인 것과 설교 그리고 사진등 바울에 대한 자료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그 결과 참 성경을 헛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을 쓴 사람에 대하여 알 필요는 없지만 그가 쓴 성경의 말씀이 저자의 배경과 그의 사상을 이해하면 좀 더 저자의 뜻을 깨닭게 되지 아니 할까요?
저는 그런 뜻에서 허락하시면 3번에 걸쳐 바울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개론적으로 바울의 성장 과정과 생애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다음번 설교에서는 바울의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가 바울에 대하여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배우고자 합니다.
첫 번째 바울을 고향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성장했느냐 하는 것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한국에서 요사이는 법적으로 고향이 어디인가? 라고 인터뷰나 원서에 질문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하도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등 우리는 고향이 어디인가에 때라 사람을 차별하고 또 끼리끼리 모이는 습성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에 와서도 그런 것이 많은 것을 사업을 하면서 봅니다.
P
바울의 고향은 길리기야지방의 다소입니다.
다소는 항구도시입니다.
지도에서 다소를 찾으셨습니까?
P
항구도시라 하면 보통 혼잡하며 많은 불륜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바울이 살던 다소 역시 이에 버금가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다소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이며 상권은 물론 교육의 도시이고 정치적인 도시입니다.
다소에서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특별히 스도이고 철학의 영향력을 많이 받은 도시입니다.
다소에서 유명한 철학자인 아덴노도로스는 로마의 아구스트(Augustus)황제를 가르친
학자이기도 합니다.
다소는 바울시대에 25만명이 살던 특별 자치 도시를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특별 자치 도시라함은 로마 법에서 자유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로마의 통치를 받는 나라들은 조공과 조세를 바쳐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도 세리들이 세금을 받아 로마에 바치는 역할을 함으로 세리들을 매국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소는 그러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린 것입니다.
다소의 시민들과 상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지 아니한 것으로 매우 많은 부를 축적하였으며 다소정부는 세금을 사용하여 좋은 길을 만들고 교육시설을 유치하며 공공안전과 공건보건에 많은 돈을 사용하여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다소의 인구는 급속도록 팽창했습니다.
고대에 무역은 배를 통해 무역을 하던 시대에 다소는 동서를 이어주는 창구 같은
지역입니다.
다소를 지나야 다른 곳으로 가기 쉬워 다소를 통과하는 배들이 항상 번잡하게 오가는 그런 곳이 바울의 고향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왔다 같다 함으로 많은 언어가 통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소는 헬라어를 사용하였으며 로마어인 라틴어, 바울의 모국어인 히브리어 그리고 노예들의 언어와 이집트어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소는 로마의 특별 도시라 로마의 시민권이 부여된 지역입니다.
다소의 시민권자는 로마의 상원의원이 될수도 있고 공직자나 군인으로 로마의 권리를
마음 것 누리는 자부심이 대단한 지역의 사람들입니다.
바울의 부모들은 그 지역에서 상업을 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될 때 천부장에게 자신이 로마의 시민권자라고 하여 매 맞는 것에서 모면하였던 것을 보아 잘 알 수 있습니다.
로마는 다소의 시민에게 다소에서 4대에 걸쳐 살면 자연이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습니다.
바울은 할아버지 이전부터 다소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와 바울은 자연이 로마의 시민권을 나면서부터 취득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베스도에게 자신을 황제의 재판에 회부해 주길 상소하였는데 바울은 헬라 문화를 배우면서 로마의 법을 배웠고 로마 법 가운데는 로마시민으로서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황제에게 직접 심문을 받을 수 있을 있는 권리를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다소의 특산물은 다소의 뒷산에서 나오는 풍부한 광물질과 흑염소털이 유명합니다.
특별히 다소의 흑염소의 털은 많은 나라에 수출을 하여 큰돈을 벌었습니다.
바울이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예! 천막짓는 일이었죠.
유대인들의 남성들은 자신이 공부하는 것 말고도 기술 한가지씩은 꼭 익혀둔다고 합니다.
바울과 같이 가르치고 공부로 생활이 안 될 때 나가서 기술로 가정생활을 이끌어 가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교사역을 하면서 천막 짓는 일을 하여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아니하고
자비량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다소의 흑염소 털로 두터운 외투나 양탄자 그리고 천막을 만드는 것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으며 다소의 흑염소 천막은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 바울이 천막 짓는 일을 배운 것은 그 지방의 토산물이기에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P사진은 현재 공원으로 지정된 바울의 생가로 현재 우물 터 만이 남았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의 이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의 히브리이름이 무엇이던가요?
예 사울입니다. 그럼 바울이 로마적 이름인가요? 헬라 이름은 인가요????
그 정도는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행전 13장 9절 이전에는 사울이라 사용하다 별안간 바울로 바뀌는가요?
어떤학자들은 바울의 선교과정에서 구부로 섬의 총독의 이름이 서기오 바울이 얻으며 그가 개종하였던 것을 기념하여 바울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아본 결과는 좀 다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자녀들의 이름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Peter는 이름이 이 Peter 성한 입니다.
바울시대에도 그의 부모는 바울에게 히브리이름으로 사울이라 지었고 그뜻은 ‘구하다 요구하다’란 의미가 있으며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식 이름을 바울이라 하였는데 그 뜻은 ‘작은자’란 의미의 두가지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물론 사도행전에서 구브로섬에서 총독이 회심하여 사울에서 바울로 사용한 시간적 이유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다음은 바울의 유년기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바울은 언제 출생하였을까요?
바울이 언제 출생하였는가는 대체로 BC5년에서 AD5년 까지 다양합니다.
바울이 순교한 년도를 대략 주후 67-68년으로 봅니다.
그러면 대략 바울은 70여세 때 순교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베냐민지파에 속하고 그의 아버지는 바리세인이었습니다.
유대교는 크게 세파로 나뉩니다.
사두개파, 바리세파, 에센네파입니다.
사두개파는 주로 제사장들이 많았으며 성경에 보면 그들은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사나 영 그리고 부활을 믿지 안하는 인본주의자들입니다.
바리세파는 그 당시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주던 파입니다.
바리세인들은 회당에서 가르치고 서기관 역할을 감당하며 모세의 율법과 언약을 중요시 하여 글자 그대로 믿고 살아가려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에센네파는 가장 경건하고 또 남성위주의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의 유업으로 우리는 쿰란동굴의 성경사본은 에센네파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성경사본을 만든 것이 현재까지 우리에게 보존된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5세정도 부터 회당에 보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역시 그의 고향인 다소에 있는 회당에 보내져 성경을 배웠을 것입니다.
다소의 부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유식한 노예들을 사 그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게 하고 또 회당에 오고 가는 일을 위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몽학선생이란 단어를 썼던 것입니다.
아마 바울도 몽학선생의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10살이 되는 유대 어린이는 회당에서 미쉬나를 배움니다.
13살에는 모세의 유법을 배웠으며 그들은 모세 5경을 거의 암기하다시피 가르쳤으며
15살이 되는 나이에는 탈무드를 배운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바리세인인 바울의 아버지는 다소가 헬라 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 바울의 부모들이 바울에게 헬라 문화를 익히게 한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2차선교 여행 때 헬라의 중심지인 아덴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스토익 철학자들과 에비구레오 찰학자들과 학적인 논쟁을 한 것을 볼 때 바울도 스토익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총독인 베스도는 바울이 사도행전 26장에서 바울의 간증을 듣고 24절에 하는 말이 “바울아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의 학식에 대하여 총독인 베스도 역시 인정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향 다소에서 13-15까지 자란 후 그는 예루살렘에서 사는 누나를 따라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받아들여져 당대의 Ivy league라고 할 수 있는 가말리엘에게 배웠습니다.
가말리엘에 대하여는 다음번 바울의 신앙에 대한 설교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승에 의하면 가말리엘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본 기록이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to be continue 기대하시라......
P바울의 모습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의 인물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10:10은 "그(바울의)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을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인들의 바울에 대한 악평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풍채는 과히 훌륭한 것 같지 안은듯합니다.
`바울과 테크라 행전'에 의하면, "그는 키가 작고, 대머리이며, 다리가 굽고, 골격이 다부지고, 눈썹이 서로 맞붙고, 콧날은 약간 굽고, 표정은 온아(溫雅)함이 넘쳤다. 때로는 인간 같고, 때로는 천사 같이 보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아 바울의 외모는 사람을 위압하는 위풍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의 약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대할 때는 약하고"라고 조소받던 바울을 갈라디아 교인들은 (갈4:14)"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에베소의 장로들은 행20:37에서 바울과의 작별을 애석하여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다"(롬16:3,4). 라고 하고있습니다.
바울의 아름다운 내적사람이 그들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바울의 안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가시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7에서 그는 `육체에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성질의 병이었는지, 설이 구구하여 알길이 없습니다.
짐작하기는 그가 간질이 있었다. 고도 하고, 다메석에서 본 광선으로 시력이 약하여 졌다는 설과 그가 곱사등이라는 설 등 큰 고통과 불편을 준 것만은 틀림 없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에서 만난 누가야 말로 하나님께서 그에 조력자로 준비해 주신 의사 인 누가가 늘 동행한 것은 병고에 괴로움을 받던 바울에게는 크나큰 위안과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런 병고와 싸우면서도 그와 같이 4차에 걸쳐 대 전도를 수행한 바울은 참으로 체력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강한 사람이기 보다는 `강하게 된 사람'이었으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란 것이 그의 간증입니다.
또 바울은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고후6:9)라고 하고 있으며
그는 전도자로서의 자기를 끊임없이 연단시킨 사람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9:27).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사도의 가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니 그것이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다.
왜냐!
그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나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가시이던 간에 바울은 우리보다 더 큰 고난과 더 큰 가시를 가지고 있던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데살로나가 후서 11장에 그는 간증하길 유대인들에게 39대를 5번씩이나 맞고 3번은 태장으로 맞았으며 한번은 돌로 맞아 죽은 줄 알았고 그의 탄 배가
3번씩이나 파선하여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선교 여행하는 가운데 강도의 위험과 강을 건너는 위험과 유대인들의 위험과 이방사람들의 위험을 감당하여야 했으며 이단형제들의 위험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섬긴 것 같이 우리도 신실하신 주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핍박자로서의 바울과 그의 회심, 그리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바울은
다음번 바울의 신앙을 다루면서 좀더 깊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순교자로서의 바울
사도행전 이후의 바울에 대한 소식은 분명치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2년간의 연금 후 석방되어 계속 몇 년 동안 더 전도 활동을 계속했으리라 생각됩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의 기사는 사도행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바울의 활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서버나 지금의 스페인까지 전도했다고 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 당시 땅 끝으로 생각한 스페인을 선교하길 원했으며 그 뜻을 이룬 것입니다.
바울은 네로황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불이 크리스찬들이 낸 것이라고 들러댔습니다.
그때부터 크리스찬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져 바울은 다시 체포되어 로마에 감금되었으며. 디모데후서는 옥중에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썼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순교할 때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구전에 의하면 그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형을 받는 것이 너무 황송해서 거꾸로 달려 죽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시민권자가 아니었다면 바울 역시 십자가형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시민이기에 로마의 시민은 그런 끔찍한 형은 받을 없다고 하여 참수형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순교한 연대는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AD 67년이고, 히에로님스에 의하면AD 68년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되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난 커서 아빠처럼 될래!
하면 우리는 성공한 부모가 됩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너는 커서 아빠처럼 엄마처럼 되거라...
하기는 정말 쉽지 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자신을 내가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라고 한 것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바울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았고 정말 모든 사람들도 잘알게 행동을 올바르게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무엇을 본받아야 할까요?
오늘 저는 무엇을 바울을 본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 드리전에 먼저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개론적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만 아니했어도 유대인들에게 인정받고 바리세인으로서 많은 바리세인들을 양육하는데 큰 공헌을 했을 것이며 산혜드린 멤버로서 유대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노인이 되어 머리가 잘려 죽지 아니하고 부자로 평안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를 만나지 아니했다면 우리는 모름 직이 아직도 저의 할아버지들이 다스리는 이씨조선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회심하고 예수의 증거자로 삶을 산 것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큰 축복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음으로 복음이 유럽에 전하여지고 그 복음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150여년전 Thomas 선교사가 1866년 9월 2일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서 활에 맞아 불에 타 순교한 후 저의 증조외할아버지처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미국에서 와서 우리에게 복음이 전하여 지고 그 복음이 결국 우리가 받게 되어 이제 종주국인 미국에 와서 다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바울이 담대하게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는 그 말을 순종하고 바울과 같은 언더우드와 많은 선교사들이 바울을 뒤이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을 본받기는 부담스럽습니다.
완벽한 사람이신 예수... 한 번도 죄를 짓지 아니하신 예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를 본받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와 성전이 같은 사람입니다.
혹시 바울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와 전혀 다름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같이 헌신된 마음과 순종의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바울과
같은 은사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단.... 우리가 바울과 같이 헌신된 마음과 순종하는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울을 본받아 바울이 받은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과 금 면류관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자랑스런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 그들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바울의 본을 보이며, 우리 모두 바울의 본을 받는 성도가 되시길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